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숭례문 방화 사건 (문단 편집) === 진화가 비효율적이었다 === 화재 신고는 비교적 일찍 되었지만 진화 과정이 상당히 비효율적이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소방 인력의 전통 목건축 구조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진화를 위해 노력했던 소방관들 개개인의 잘못이라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대부분의 건축물이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21세기에 제도적으로 전통 목건축에 대한 소방 인력 교육이 부족했던 것이다. 당시 소방관들이 돌입하기에는 너무 위험했기 때문에 밖에서 소방차 32대로 물을 퍼부었지만 '''지붕이 완전 방수'''라[* [[https://m.yna.co.kr/view/GYH20080211000600044|기사 자료 참조]]. 애초에 [[기와]]지붕이라는 것이 반영구적인 지붕 건축을 목적으로 고안된 자재인데다, 기와는 불에 구운 흙이기 때문에 수분이 쉽게 통과할 수가 없다. 게다가 자료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와 아래에도 바로 목재가 드러나는 게 아니라 석회와 마사 등을 섞어 발라놓았다. 이런 상황이니 지붕에 물을 백날 뿌려봤자 내부로 수분 침투가 불가능하다.] 2층의 지붕 내부에 붙은 불을 끌 수가 없었다. 목건축은 나무가 물에 닿으면 썩으므로 지붕 방수에 엄청 신경쓰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 궁궐 등지에 가 보면 잘 알 수 있는데, 아무리 비가 거세게 퍼부어도 기둥이 습기는 먹을지언정 절대 통로나 건물을 받치고 있는 기둥까지 비가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기와를 걷든가 서까래에 구멍을 뚫든가 해서 불이 붙은 부분에 직접 물이 닿게 했어야 한다고 했지만 당시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들은 물론 경찰, 서울시, 현장 생중계를 하던 방송사 등 아무도 이를 몰랐다. [[문화재청]]의 전문가들은 너무 늦게 도착해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소방방재청에선 이런 고건축물 화재에 대비한 훈련을 전혀 한 적이 없어서 소방관들은 지붕이 완전 방수라는 걸 몰랐다고 한다. 황평우 문화재연구소장 등 몇몇 민간 문화재 전문가가 TV 중계를 보고 급하게 연락을 시도하고 현장에 나왔으나 모두 무시당했다고 한다. 당시 전국의 수많은 유적지에도 소화기만 비치되어 있었지 화재 상황에 대비한 구체적인 매뉴얼 따위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 또 소방관들이 내부에서 천장에 구멍을 뚫고 물을 뿌리려고 했으나 붕괴 위험이 있어 포기했다고 한다. 전통 목건축물은 나무를 겹겹이 쌓아서 만들어진 것이고 무거운 지붕의 무게로 기둥을 누르는 구조이기 때문에 기둥 등 구조체가 타게 되면 붕괴하기가 쉽다는 이유였다. 사실 목조 건축물이 5시간 이상 버틴 것도 기적이다.[* [[2005년 양양 산불]] 당시 [[낙산사]]는 소방대원들이 제대로 진화작업에 나서기도 전에 전소되어 버렸다.][* 단청을 한 목재는 그렇지 않은 목재보다 내화성이 좋다.] 전근대 화재 진화는 연소(延燒)의 방지에 중점을 둔 방법이다. 다시 말해서 건물에 붙은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이미 불이 붙은 건물은 포기하고 그 옆의 건물을 부숴 불이 더 이상 번지게 하지 않는 방법'''[* 조선시대의 소방청인 [[금화도감]]의 금화군에게 지급된 물품 중에는 물양동이도 있지만 이들의 주요 장비는 '''쇠스랑과 도끼, 망치'''였다. 이들이 하는 일도 화재가 발생하면 최대한 빠르게 화재 중심지 근처에 있는 가연성 물질들을 '''때려부숴서''' 화재 현장에서 치워 버리는 일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소방관들이 힘세고 강해야 한다는 사실은 변치 않았다.]이다. [[산불]]이 났을 때 [[맞불]]을 놓아 불이 더 번지지 않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원리다. 숭례문은 국보의 지위를 유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숭례문이 '국보 1호'[* 국보 1호라는 명칭은 현재 국보로 대체되었다. 국보의 가치로 번호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관리번호라는 의미 때문이다.]라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개요 문단에서 보듯이 '''완전히 소실되지는 않았다.''' 물론 막대한 피해를 입어 예전과 같은 가치는 회복하기 힘들다. [[2005년 양양 산불]]로 종각이 전소되어 소실된 [[낙산사 동종]]은 종각이 탔다고 해제된 게 아니라 '''종 자체가 녹아서 구릿물로 변해 사라졌기 때문에''' 그해 7월 7일 보물에서 지정 해제되었다. 사고 이후 서울소방에서는 초동진화에 실패한 것이 상당한 [[트라우마]]로 남았는지 [[2010년]] 16억 원의 예산을 투자해 [[오스트리아]] [[로젠바우어]]에서 [[MAN TGS]] 차대 무인 파괴 방수탑차를 도입했다. 중부소방서 본서(무학 119안전센터)에 가 보면 구경할 수 있었다.[* 물론 마냥 순수한 이유만으로 도입했을 리는 없고 좀 더 좋은 장비를 도입하기 위한 예산을 타낼 구실로 이 사건을 이용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좋은 소방 장비가 생겨서 국민의 안전에 도움이 되면 되었지 나쁠 건 전혀 없기 때문에 좋은 결정인 셈이다.] 하지만 2022년에 한국산 특장사인 진우SMC의 무인파괴방수차로 교체되었다. 전임 차량은 광나루 안전체험관에 가면 구경할 수 있다.[* [[2022년 서울 남대문시장 화재]] 기사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기존 차량과의 다른 점은 천장과 벽의 파괴방식이 스팅어 HRET(High Reach Extendable Turret)가 아니라 그냥 뚫고 들어가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또 한국산이라 전임 차량과 비교하면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중앙119구조본부]] 시흥, 서산, 울산, 구미, 익산, 충주119화학구조센터에 한 대씩 배치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